큰형님이 떠났습니다.
갑작스러운 부음처럼 슬픔도 갑작스레 왔다
갔습니다 남은 내가 한 일은
휴대폰 번호를 지우는 것
이름과 숫자를 지우고 내친김에
항간과 어머니와 초또마을
절구통과 떡시루와 용접기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까지도!
그쯤이면 다 지워졌을 성싶습니다
지상에서의 이별은
성호를 긋듯 당신을 차례로 지우는 일
또 내가 떠날 때까지 썩지 않게 하는 일입니다
- 김종철 '당신을 지우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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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가까운 이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 가혹하다.
큰 죽음이든 작은 죽음이든 마찬가지다.
'당신'이 육신의 끈만 풀어 놓았을 뿐
기억을 함께 거두어가지 않은 탓이다.
울퉁불퉁한 세월의 마디에 새겨진 흔적들이 어찌 쉽게 지워지겠는가.
생전에 아끼던 옷이나 신발, 주소, 명함, 휴대폰, 우스꽝스러운 말투, 아련한 눈빛...,
그를 이뤘던, 터무니 없이 사소한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는 그림움이 된다.
삶은 만남과 이별을 쌓아가는 과정이고 이별은 '당신'을 차례로 지워가는 일이다.
하지만 어떤 이별은 끝내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렇게 불면으로 뒤척이는 가운데 세월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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