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이 어떻게 사는가'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바를 행하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하는 바를 고집하는 군주는 권력을 유지하기 보다는 잃기 십상이다. 어떤 상황에서나 선하게 행동할 것을 고집하는 사람이 많은 무자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면그의 몰락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군주는 필요하다면 부도덕하게 행동할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군주의 처신에 관해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생략하고 실제로 일어나는 것들을 고려 하겠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2.
사랑을 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이 더 나은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었다.
내 견해는 사랑도 받고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둘 다 얻기 어렵기 때문에 굳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사랑을 받는 것 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이점은 인간 일반에 대해서 말해준다.
즉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자인 데다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고 이득에 눈이 어둡다는 것이다.
당신이 은혜를 베푸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당신에게 온갖 충성을 바친다.
이미 말한 것처럼, 막상 그럴 필요가 별로 없을 때, 사람들은 당신을 위해서 피를 흘리고,
자신의 소유물, 생명 그리고 자식마저도 바칠 것 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당신이 정작 궁지에 몰리게 되면, 그들은 등을 돌린다.
따라서 전적으로 그들의 약속을 믿고 다른 방비책을 소홀히 한 군주는 몰락을 자초할 뿐이다.
...
...
인간은 두려움을 불러 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자신을 사랑한 자를 팽개쳐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항상 효과적이다.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
#3.
마키아벨리는 가치 세계를 정치 영역에서 떼놓았다. 정치 영역에 들어섰던 가치 세계가 줄기차게
패배했던 역사의 광경을 참으로 매몰차게 기술했다.
정치 영역에서 가치와 사실의 분리는 막스베버의 "작업으로서의 정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는 정치 영역에서 사실 세계와 가치 세계가 다시 공존할 수 있을지 없을지 논하지 않았다.
가치의 부활을 촉구한 토마스모어는 집권자에 의해서 사형당했으나,
담담히 사실만 기술한 마키아벨리에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저, 글에서 경멸하는 '인간'이라는 보통명사가 무척 거치적 거린다.
군주론의 독자는 군주가 아니다.
인간이라는 보통명사 속에서 고인 찝찝함, 저열함, 그리고 그런 더러운 것들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는 군주를 세우거나 그의 통치를 받는 신민의 것이다.
저자의 날카로운 혀는 독자의 가슴을 후벼파낸다. 그건 나쁘지 않다.
싸우려면, 적어도 지지 않으려면 먼저 각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4.
참다운 개혁가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보는 사람도 아니며
또한 시기에 적절하게
그리고 시기에 맞지 않게
그러한 개혁의 필요성을 설교하는 사람이 아니다.
참다운 개혁가는 개혁을 달성하는 사람이다.
#5.
대상으로부터 해를 입을 수 잇따는 생각이 드는 '혐오'는 공포라고 한다.
저항하면 그 해를 피할 수 잇다는 생각이 드는 '혐오'는 용기라고 한다.
돌연한 '용기'는 분노라고 한다.
변함없는 '희망'은 자신이라고 한다.
변함없는 '절망은 자신없음 이라고 한다.
#6.
젊은 미술가들이 미켈란젤로의 작품의 유행에 휩싸여 단순히 그의 수법(manner)만을 모방했기 때문에
잘못되었다고 했다. 후대의 비평가들은 이 시기를 가리켜 매너리즘(Mannerism)시대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