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을 오래하다보니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사업을 진행해 보니 제안을 잘 하는 사람이 있고 운영을 잘하는 사람이 있더라는 거다.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의 사장님 주변에는 신규 사업을 제안하는 외부 사람들이 자주 있다.
그림(사업구현방법)도 잘 그리고 문제나 위기에 대한 대안도 있고 나름의 인맥도 있다고 얘길 한다.
어떤 사람들은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제안을 잘 한다.
기업 대 기업의 제안은 좀 얘기가 다르지만 사람 대 사람의 제안은 기본 말빨이 안되면 제안을 설명하는 시간조차 확보하기 어렵다. 그런데, 정작 사업을 구현하기 위해 실무를 진행해 보면 얘기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기획안을 작성하기 시작하면 최초 제안을 할 때와 달리 무수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업 제안을 받아들여서 실무 기획에 들어가면 이제 사업은 다 된거야!라는 식으로 행동하곤 하는데 오판도 그런 오판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풀고 넘어가야 한다는 확신을 경험상 가지고 있다.
신규 사업의 대부분은 한 달이나 두 달 혹은 일년을 넘기더라도 제대로 준비만 한다면 성공할 수 있기 마련이다.
철저한 검증과 자기 성찰 없이 사업을 시작했다가 초반 기획 단계에서 예견된 문제가 현실화되었을 때 신규 사업이란 건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가끔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단순한 답변을 듣기도 한다.
아무나 쉽게 이야기 하는 '문제는 해결하면 된다'는 식의 답변 말이다.
사하라 사막을 건너야 하는데 물통에 물이 부족하고 아직 출발은 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해 보자.
오아시스가 있긴 한데 어딘지 정확히 모른다.
대~략 2,3일 정도 가면 오아시스가 있다는 건 대부분이 알고 있다. 그래서 출발한다.
재수 좋으면 오아시스를 찾아서 사는 거고, 재수 없어서 오아시스가 생각보다 멀거나 겨우 찾았는데 가뭄으로 물이 말라 버렸거나 딴놈이 먼저와서 오아시스에서 물장사를 하고 있다면 골치 아파진다.
심한 경우엔 오아시스를 못찾아서 일행이 말라 죽을 수도 있다.
이 비유가 다소 극단적일 수도 있겠으나 거의 대부분 사업기획의 밑그림의 실패는 이와 같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애시당초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니 그 다음 단추도 제대로 끼워지지 않아야 할텐데 단추 끼우기의 속성상 끝까지 가기 전에는 제대로 끼웠는 지 그렇지 않은 지 판단하기 애매하다는거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웠으면 구멍이 하나 남던가 단추가 하나 남던가 할텐데 급하게 가다보면 제대로 못보게되고, 그걸 빨리 발견하면 첫 단추를 고쳐 끼든가 옷 입기를 포기하면 된다.
그렇게 크지 않은 손실로 잘못된 판단을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론상 그렇다는 말이고, 실제로 신규사업을 해보면 왠만큼 단추를 끼우고 나서도 이게 제대로 된 건지 아닌지 판단이 안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야 아나?라는 푸념도 나오게 된다.
최악의 경우는 첫단추 잘못 끼운 것 까지는 좋은데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고 나서도 맛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경우다. 망하는 회사의 공통점이 바로 이런 징후가 나타난다는 거다.
결국 회사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사람은 입에 단 제안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회사에 가장 필요한 사람은 보기엔 그럴싸하지만 실상 만들어보면 삽질일 가능성이 큰 사업 제안조차 회사에 맞게 만들고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사람이다.
물론 열의 힘을 들여서 성공할 수 있는 신규사업이 백의 힘을 들여야 한다는 딜레마도 있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사가 그렇듯이 회사는 개개 조직원이 의사 결정권을 갖기 힘들다.
때문에 할 수 없이 답 안나오는 사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 때 반반의 확률이라도 존재한다면 그것을 최선의 결과로 이끌어 내는 사람이 조직에는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더욱 필요한 사람은 그런 입에만 단 사업 제안이 들어왔을 때 단호하게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거부하도록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만 갖고도 안되고,
조직적 지원이 있어야 하고,
문화가 있어야 하고,
오너의 현명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입에 단 제안을 잘하는 사람일까?
그런 제안조차 사업성 있게 만들어 내는 운영을 잘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칼같이 현실을 잘 알고 말도 안되는 제안은 목숨걸고 막아내는 초한지 한신과 같은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면... 새로운 변종일까?
요즘은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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