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소니(Sorry Sony)"
2002년 CD플레이어와 MP3 겸용 제품인 '아이리버'의 성공을 자축하며 레인콤(현 아이리버)이 자신있게
내세웠던 광고 문구다.
하지만 레인콤이 미국 시장 석권의 꿈에 부풀어있는 동안 등 뒤에는 애플의 비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시장 판도를 일거에 바꿔 놓은 '아이팟'이었다.
세계 최고의 휴대폰 기업인 핀란드 노키아, 항공업계의 '언터처블' 미국 보잉사의 공통점은 출범 당시 목재회사였다.
기업은 계속 진화한다.
삼성전자를 과거 천하의 별 볼일 없던 가전회사에서 오늘날 눈부신 약진을 거듭하고 있는 글로벌 IT 기업으로
키운 것은 1993년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이건희 회장의 한마디 였다.
# 월스트리트 신화의 종말
진화는 특정 가치관이 투영된 진보와 다르다.
진화의 진정한 의미는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생존에 성공하는 것이다.
한때 번성했다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기업의 모든 생사를 단순히 진화론적 세계관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혹독했던 빙하기가 지구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고 모든 생물의 진화를 촉진시켰듯이
작금의 경제위기 역시 지구의 현존하는 비즈니스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업의 진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찰스 다윈이 태고의 땅인 갈라파고스 제도를 탐험하면서 정립한 진화론은 어떤 의미에서 자연계 보다
경제계에서 보다 분명하게 증명된다.
환경으로부터 '자연선택'을 받지 못하는 생물이 도태되듯이 시장과 고객의 외면을 받는 기업은
아무리 뛰어난 명성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위기를 맞을 수 밖에 없다.
월스트리트 신화의 종말과 세계 거대 제조업체들의 몰락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 전쟁에도 기회는 있다.
미국의 정유회사인 셸은 환경 변화에 성공적으로 진화한 기업이다.
셸은 유가 안정기였던 1960년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에너지 위기 시나리오' 라는 것을 작성했다.
마침내 1973년 10월, 중동전쟁으로 오일쇼크가 현실화됐을 때 셸은 가장 탁월한 위기관리 역량을 선보였고
그 결과는 업계 7위에서 2위로의 도약이었다.
기업이 불황보다도 더 두려워하는 전쟁에도 기회는 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미국의 서부개척시대 역마차사업으로 일어선 회사였다.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금융사로 발돋움하는 기회를 잡게된다.
전쟁 발발과 동시에 유럽에 있던 15만명의 미국인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오도가도 못하게 된 미국인들은 프랑스 파리에 있던 아메리칸익스프레스 사무실 앞에 진을 쳤다.
이 회사는 성의를 다해 여행자의 귀국 수속을 도왔다.
전쟁 중에도 유럽 사무실을 폐쇄하지 않고 여행자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줬다.
2차 대전때도 유럽은 폐허가 됐지만 아메리칸익스프레스는 종전 후 어느 회사보다 먼저 유럽 영업소를 재건했다.
# 274년간 인도를 지배한 동인도 회사
새삼스런 풀이지만 '법인'이란 용어는 법적 인간이란 뜻이다.
기업은 인간에게 부여된 법적 지위를 거의 유사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의인화돼 있다.
따라서 생물학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마찬가지로 똑같은 생로병사의 프로세스를 갖고 있다.
유일하게 인간이나 생물과 다른 점은 생리적인 수명이 없다는점 때문에 대를 이어가면서 불멸이라는
특권을 누릴 수가 있다.
물론 기업이 아무리 강력해도 정부나 권력을 대체할 수는 없다.
세계 최고의 기업도 징집과 조세 징수권을 갖고 있는 아프리카 어느 작은 나라의 권력과 비교될 수는 없다.
하지만 산업혁명 이후의 역사는 기업 흥망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기 훨씬 전인 1700년 영국의 동인도회사는 고작 350명의 직원으로 출범했지만
나중에 전체 영국군 병력의 두 배에 해당하는 사병 26만명을 동원해 인도를 통치하며
무려 274년 동안 존속했다.
동인도회사가 아니더라도 현존하는 기업 중에 100세를 넘어 생존하고 있는 기업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역동적인 환경에 진화를 거듭한 결과다.
세상에 불멸은 없다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선 미리 절망할 필요가 없다.
인간들이 우습게 여기는 개미조차 1억년을 살고 있지 않은가...,
[참고]
지금으로 부터 150년 전인 1859년 '종의 기원'을 썼던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은 모든 생물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자연 선택'을 통해 진화한다고 썼다.
신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을 창조했다는 '스콜라 철학'이 유럽을 지배하던 시절에
대단히 혁명적인 이론이었다.
자연선택설은 크게 네 가지 단계를 거쳐 일어나게 되는데, 그 첫 번째 단계가 과잉생산이다.
생물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비하여 많은 수의 자손을 낳게 되는데 그들은 모두 같은 특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차이(변이)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수의 자손을 낳게 되면 자손들 간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 경쟁이 일어나게 된다.
생존 경쟁에서는 환경에 가장 적합한 특성을 가진 개체들만이 살아남게 되고(적자생존,자연선택),
그렇지 못한 개체들은 도태된다.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은 개체들의 생존에 유리한 유전 물질은 자손에게
전달된다. 이 같은 과정이 무수하게 반복되면서 새로운 종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자연선택의 기준은 오로지 생존과 번식이다.
진화론의 틀로 세상을 설명하는 이들은 인간이 공룡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데 실패한 나머지
멸종됐다는 분석을 내놓는 것에 냉소를 보내고 있다.
고작 300만년을 생존한 인간이 무려 1억 5000만년을 살아남은 공룡에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진화론이 인정받기까지는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이 걸렸다.
후세에 변이가 나타나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과정을 규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멘델의 완두콩 실험을 통해 정립된 유전법칙과 1953년에 밝혀진 DNA 구조와 기능에 대한 이해가 있고서야
진화론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진화'하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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