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카고의 시어스타워는 마천루 경쟁의 절정이자 미국 자본주의의 자부심이 담긴 빌딩이다.
1973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높이 443m(110층)에 1만 6000개의 창문을 달고 미국 최대 유통업체인
시어스로벅의 임직원 7000 여명을 받아들였다.
시어스로벅은 1886년 우편 판매라는 당시로는 기발한 착상으로 미국 소매물류 시장을 석권한 기업이다. 20세기 초,중반 자동차 대중화 바람을 타고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던 이 회사는 마침내 세계 최고층 빌딩을 짓고 전세계에 자신들의 성공신화를 알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10 여년이 지난 1980년대, 시어스로벅은 당시 내부 시장 서류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던 월마트라는 회사가 자신을 거꾸러뜨릴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월마트는 대도시 대신 지방, 1년 365일 할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단숨에 바벨탑 같은 시어스타워를 기어 올랐다. 월마트는 1992년 시어스로벅의 열 배가 넘는 67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시어스타워 시대가 끝났음을 알렸다.
# 진화에도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
진화는 결코 일정한 속도로 일어나지 않는다. 환경 변화가 느린 시기에는 진화의 속도도 느리다.
따라서 급격한 형태의 변종(변이)은 오히려 생존경쟁에 불리하다.
반면 변화의 양상이 예상치 못하는 속도로 빨라질 때는 스피드를 갖춘 변종이 살아남을 공산이 크다.
결론은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변이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그런 변종만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시어스로벅이 월마트에 역전을 허용한 것은 1960년대 이후 경제성장으로 미국 중산층의 소비 패턴이 간적 구배보다는 직접 구매쪽으로 급격하게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무조건 변종이 되겠다고 달려드는 것도 곤란하다.
자연계에선 수많은 변종 중에 극소수만이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생물은 진화의 조건을 일단 갖추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생물은 원래 상태로 되돌릴 여유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인간이, 기업이 인위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한는 변종 전략은 위험할 수 밖에 없는 도박이다.
하지만 변화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는 방파제에서 그냥 넋놓고 있을 수만도 없는 일이다.
# 타성을 버려야 살아 남는다
만약 어느 날 반도체 없이 PC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면 어떻게 될까.
전선 없이 무선으로 전력을 공급하는 기계장치가 개발되는 날, 전 세계 전선업체들과 목재업체, 건설업체들은 어찌되는 걸까.
해당 기업으로서는 정말 끔찍한 일이겠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변종 전략을 채택하는 첫걸음은 타성을 깨부수는 데서 시작된다.
어린 코끼리의 뒷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2m 길이의 사슬에 연결하면 코끼리는 성년이 돼서도 2m 이상을 움직이지 못한다. 그만큼 타성은 무서운 것이다.
대공항을 기점으로 성장한 3M의 영문 이름은 미네소타광공업주식회사(Minesota Mining Manufacturing) 이었다. 이름 그대로 광산 회사였고 자본금 5000달러의 별 볼일 없는 중소기업이었다.
하지만 1925년 3M의 연구원인 리처드 드두가 스카치 테이프의 시초인 '마스킹 데이'를 개발하면서 이 회사의 변종전략은 급피치를 올렸다.
대공황기에 집안 가재도구나 살림살이를 재활용하는데 관심이 많았던 소비자들에게 스카치 테이프는 무척 요긴한 수단이었다.
나중에 '포스트 잇'으로 연결된 변종 상품은 3M을 세계적인 사무용품 전문회사로 발돋움하도록 만들었다.
# 승부는 끝나지 않는다
기업이 진화에 실패하는 이유는 내부에 누적된 불안요인이 외부 위협 요인과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불량 변종'을 양산하거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10여년간 삼성, LG가 글로벌 디지털 시장을 질주하는 동안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도무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전자왕국' 일본의 기업들이었다.
소니, 도시바, 샤프, 후지쯔 등은 지금도 모든 기업들이 부러워하는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디지털 컨버전스'와 '감성공학'의 영역에서 스스로 변종이 되지 못했다. 그걸 두려워 했다.
삼성이 낸드플래시를, LG가 LCD라는 변종제품을 앞세워 양대 전자부품 시장을 장악하는 동안 일본 기업들이 한 일이라곤 이미 효용이 다한 '경소단박'의 전략을 재탕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저력만 놓고 본다면 당대 최고인 일본 기업들이 IBM처럼 화려한 비상을 재개하지 말란 법은 없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승부는 결코 완결되는 법이 없다.